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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과 걱정거리를 끼고 살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감사할 것으로 가득차 있다는
인디언들의 말을 떠올립니다.



수도암-가야산 종주가 갖는 의미 1

조회수 4558 2015.06.14 23:45:17

김천 수도산에 있는 수도암은 신라 말기인 859년에

도선국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증산면의 청암사에 머물 때

수도할 곳을 찾다 수도암 자리를 발견하고는 기쁨에 넘쳐 7일 동안이나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수도암 법당 앞에 서면 앞쪽의 완만한 수평의 능선 위로

연꽃봉오리가 봉끗 올라오듯 가야산이 솟아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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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수도암 법당 앞에서 가야산이 연꽃 봉오리처럼 떠오르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저 역시 한동안 기쁨과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봄이 오면

수도암에서 가야산까지 꼭 걸어보리라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마침 지난해에는

사마타명상을 시작한 해였고, 그래서인지 더 마음에 간절히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자료를 찾는다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지금도 해마다 한차례씩 해인사 승려들이

수도암까지 걷는 의식이 행해진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하! 그랬구나 싶었지요. 신라때부터 수도암과 가야산 해인사 간의 인연이

예사롭지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불교의 인연뿐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수도암-가야산 종주를 통해서 확인한 것처럼,

아주 오랜 고대부터 가야산이 경상권의 중심산이라는 것 - 실제로 가야산 정상에 서보면

가야산 주변의 산들이 모두 가야산을 바라보며 둘러싸고 있다는 것 - 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가야산에 해인사 법당이 들어서기 오래전부터

가야산에는 산신령인 정견모주(正見母主)를 모시는 무당들이 있었고,

그 산신령의 힘이 너무도 커 불교사찰인 해인사가 들어선 뒤에도 일주문 안쪽 법당 바깥쪽에

'국사단(局司壇)'이라는 이름으로 그 산신령을 모시는 사당을 두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인사에 무슨 일이 생기면 주지스님이 바로 이 국사단에 와서

정성을 드리고 정견모주께 간절히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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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신령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신들과 마찬가지로 여신입니다. 

산신을 우리말로는 '산마누라님'이라고 하는데, '마누라'가 고대에 여성에 대한 극존칭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산마누라'는 바로 여신을 뜻하는 말인 거지요.

일부 사찰에 모셔진 산신들이 남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조선시대 가부장제가 우리사회를 지배하면서

사대부와 승려들이 여신을 남신으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야산의 정견모주의 힘이 세서 조선의 사대부나 승려들조차 감히

그녀의 모습을 할아버지 모습으로 바꾸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덕에 가야산

산신령의 모습을 국사단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인사를 찾는 대중들은 그런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해인사의 승려들도 그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정견모주는 그곳에 법당이 들어서고 승려들이

기도하고 수행하는 모습을 너그러이 지켜보며 가야산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임란때나 6.25전란 때 수난을 당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산신령이

보호한 덕분이라는 거지요..... 그만큼 가야산이 신성한 산이고 그 힘이

세다는 뜻일 겁니다.


참가자들에게는 말 안했지만,

그런 사연을 알고 있는 저이기에 수도암-가야산 종주 계획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카페의 구성원들이

여성분들이 많고, 40, 50대분들이 많은 것을 감안할 때 그 여정을 하루에 하는 것은

무리다 싶어 비박을 낀 1박2일 일정으로 계획한 것입니다. 그리고

8분이 신청하셨지만, 한분은 개인 사정으로 오지 못해 저를 포함해

모두 7분이 여정에 참여했습니다. 


17일 김천공용터미널에서 참가자들과 만나 수도암에 도착한 뒤

종주를 시작하는 18일 월요일의 날씨를 살폈습니다. 계절풍 탓인지 구름이 낀다고 했다가

비가 온다고 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7일 저녁이 되자 큰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내일 낮까지 비가 올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저는 중간에 비박해야 하기

때문에 비오는날 수도암-가야산 종주를 시작하는 것은 가능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비옷도 준비하지 않았구요. 그런데 참가자들의 일정을

생각하니 날자를 미루기도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월요일 오후부터는 비가 그칠 거라는

소식을 듣고 저는 18일날 아침공양을 마치고 종주를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참가자들에게도 내일 아침 식사를 하고는 바로 출발하겠다고 알렸습니다. 


저는 밤새 한잠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음식을 잘못 먹은

탓일까 했습니다만, 비가 올까봐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그보다 더 깊은 흥분이 있었던 거지요. 

새벽에 일어나니 과연 수도산 서쪽으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수도산의 신령께 수도산에 오르는 동안 큰 비가 내리지 않기를 기도하며

아침공양을 하고 7시에 출발했습니다. 다행히 수도산을 오르는 동안

이따금 가랑비가 내리는 정도여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비가 오더라도 크게

오지는 않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수도산-가야산 종주는 시작되었습니다. 


9시경에 단지봉(1327미터)과 수도산 정상(1317미터) 갈림길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고 수도산 정상으로 갔습니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한데도

신기하게 가랑비는 그친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수도산 정상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서니 남쪽, 서쪽, 북쪽으로 수많은 산들이 첩첩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서북쪽으로는 덕유산이 보였고, 맑은 날이면 남서쪽 멀리로는 지리산 천황봉도 보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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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이 늘어선 산들 사이로 운해가 흐르는 모습은 감동이었습니다. 

DSLR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후회될 만큼 너무도 아름답고 멋졌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기쁨에 휩싸여 그 장관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려 종주 중간 기점인 단지봉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단지봉으로 향하는 능선에 들어서니

곧 가랑비가 촉촉히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상한 것이었지만

참가자들이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지요.... 12시가 넘어

단지봉 정상에 이를 때쯤에는 가랑비가 제법 굵어졌습니다. 이미 몸은 촉촉히

젖은 상태였는데, 단지봉 위에 올라서니 바람마저 불었습니다.


한가지 놀라운 것은 5월중순이면 이곳 1300고지에는 이제 막 초록이 올라와야 하는데

이미 6월달의 초목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년보다 더위가

10여일 먼저 온 것이지요. 그래서일까 단지봉 정상에는 산철쭉 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답더군요. 그리고 너머로 가야산의 웅장한 모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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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가 오니 점심을 해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꿈꾸는자님이 가져오신

참외를 하나씩 먹고 비박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서둘러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좌일곡령을 지나 목통령을 향해 걸었습니다. 좌일곡령의 정상은 넓찍한 바위들이 있어

사방을 조망하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한동안 앉아

가랑비가 오는 날씨 덕에 이곳 수도산-가야산의 깊은 감동을 맛볼 수 있음에 모두들 감사했습니다.

얼마쯤 더 가니 용의 바위라는 곳이 나오더군요. 그곳 역시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멋진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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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녁 6시 전에 목적지인 목통령에 도착했습니다. 목통령을 비박지로 정한 것은

그곳이 그 일대에서 고도가 제일 낮고(1000미터쯤), 유일하게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곧바로 비닐을 꺼내 펴고 매트와 침낭을 그 속에 폈습니다.

그렇게 비박할 곳을 대충 준비한 뒤에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짐이 많고 물도 부족해 우리는 국을 끓일 생각을 못했는데,

박하님이 국을 끓여서 건덕지만 건져 싸오신 덕분에 우리는 저녁을 맛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은 역시 탕국이 있어야 제맛이 난다고 하며 말이지요.

아마도 점심을 거른 뒤의 저녁이라 더 맛났을 겁니다.

비가 그친 하늘은 조금씩 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을 먹은 다음 우리는 모두 침낭 속에 누워 고단한 몸을 쉬며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바닥이 고르지 않아 침낭이 자꾸 미끄러져 중간에 잠을 깨곤 했습니다.

한밤중이 되니 놀랍게도 하늘을 가린 나무잎들 사이로 성탄의 등불처럼

별들이 매달려 반짝이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온통 하늘에 별들이 가득 했습니다.

비오는 날 산행을 하고 밤중에는 별들 속에 누워 비박이라....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저희는 참으로 멋진 스토리라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