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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선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게시판입니다.
근심과 걱정거리를 끼고 살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감사할 것으로 가득차 있다는
인디언들의 말을 떠올립니다.



수도암-가야산 종주가 갖는 의미 2

조회수 3995 2015.06.14 23:50:32

목통령에서 새벽에 일어나니 날씨는 화창하기 그지없고,

새들이 우지짓는 소리는 감미롭기만 했습니다. 과연 어제 비를 맞고

걸었나 싶을 정도로 날씨는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침을 하는 동안

그냥바람님이 물을 뜬다고 마을쪽으로 난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셨습니다.

꿈꾸는자님과 제가 뒤따라 10분 내려가니 과연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냥바람님이 물 담은 물병 봉지를 들고 개울에서 올라오자

꿈꾸는자님이 받아들었고, 저도 2개 손에 쥐고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제 단지봉을 지나면서부터 오른쪽 무릎에 이상이 와서

절룩거리며 엉거주춤 걸었습니다. 평소 산길을 오래걸으면 아프던 그런 증상이 아니었습니다.

발로 땅을 디딜 때 무릎을 구부리면 통증이 심하게 왔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겪는 통증이었는데, 자고 나도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제 겨우 절반을 왔고, 두리봉(1113미터)과 가야산(1430미터)을 넘어야 하는데

걱정이 됐습니다. 리더가 그 모양이니 일행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걱정이 많이 되었을 겁니다. 그래도 내색않고 편안히 알아서 움직여주어서

뭐라 말할 수 없이 고마웠습니다. 꿈꾸는자님은 파스를 붙여보는게 어떻겠냐며

파스를나눠주셨습니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침낭과 깔개를 접고 가방을 챙긴 뒤

8시쯤 두리봉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나고 더없이 화창했지만 어제 비가 온 탓인지

날씨는 뿌앴습니다. 오늘은 사진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지요.

두리봉은 1110미터급이므로 그다지 높지는 않았지만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편인데다 시야를 활짝 열어주는

장소도 별로 없어 지루한 느낌이 났습니다. 게다가 두리봉 정상 표시가 분명치 않아서

이 정도면 두리봉을 지났으려니 하고 걸었는데

막상 두리봉 정상에 도착한 것은 2시가 넘은 뒤였습니다.

제가 다리가 아파 일행이 중간중간 쉬기도 하고, 중간에 길을 우회한다고

헤매기도 해 그리 시간이 지체된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두리봉 표시가 있는 삼각점을 발견하면서 우리가 있는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잃는 것이 있음 얻는 것이 있다더니, 우리신세가 꼭 그랬습니다.

두리봉 길을 걷는 동안 제 불편한 걸음을 걱정스레 지켜보던 박하님이

제 다리와 몇군데를 만져보더니 골반이 틀어져서 그런 것 같다며

골반을 바로잡는 동작을 가르쳐주더군요. 제가 주로 앉아서 많이 지내다보니

저도 모르게 골반이 틀어졌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무릎은 바로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편안하게 좀 걸을 만한 곳이 있음 트랜스워킹으로 활보하며 걸으면

빨리 좋아지련만 두리봉 길에는 그런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앞장서는게 좋겠다 싶어 오른 발을 질질 끌며 열심히 걷다보니

조금 나아지더군요. 골반이 틀어진게 틀림없었던 모양입니다.

중이 제머리 못깎는다고, 워킹을 가르치면서도 제 몸의 부실한 것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많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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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두리봉 끝이 가까워지자 가야산이 갑자기 눈앞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더군요.

하지만 수목이 우거져 시야를 가렸습니다. 그럼에도 가야산의 위용이

느껴졌습니다. 과연 가야산이다 싶을 정도로 멋지게 말입니다. 두리봉을 지나니

계곡에서 물흐르는 소리가 우렁차게 났습니다. 두리봉과 가야산을 이어주는

부박령이란 능선이었습니다. 산죽 터널이 곳곳에 있는 곳으로

계곡에서 들려오는 힘찬 물소리 때문인지 두리봉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더군요.


가야산을 오르려면 아무래도 허기를 면해야 할 것 같아서 우리 일행에게 물이 몇병이나 남았는지

확인해보니 500ml 5병 정도밖에 안 남았습니다. 식수로 쓰기에도 부족했습니다.

어제와 달리 해가 나다보니 땀이 많이 나 모두 물을 많이 마신 탓이지요.

시간도 3시반이나 돼 밥해먹는다고 지체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밥해먹는 것을 포기하고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는

서둘러 가야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가야산 북벽은 거의 70-80도의 가파른 비탈로 되어 있었습니다.

일행이 걱정할까봐 저는 거의 네 발로 기다시피하며 열심히 올랐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기어오르듯 걷다보니 다리아픈 것이 조금씩 가라앉더라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가파른 오르막길을 큰 고통없이 올라왔으니 말입니다.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있는 넓은 터에서 일행과 함께 잠시 쉰 뒤

곧바로 가야산 상왕봉 뒤편으로 올라왔습니다. 상왕봉 뒤편으로는 운동장만한

넓직한 암반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올라와 돌아서니

갑자기 시야가 열리며 가야산을 둘러싼 수많은 능선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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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큰 감격에 빠졌습니다. 우리가 고단한 몸을 이끌고 가야산을 잘 올라왔다는 것도 놀라왔지만

상왕봉 뒤 암반 위에서 바라보는 첩첩 산들이 주는 깊은 감동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신성한 것이었고, 과연 가야산은 신성한 산이고, 거룩한 산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이 필요없었습니다.

우리는 암반 끝에 앉아 한동안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가야산에 오른 기쁨보다는

가야산이 정말 신성한 곳임을, 그래서 수많은 산들이 가야산을 바라보고 있음을

두 눈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수도암-가야산 종주 길을 걸어보지 않은 이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비밀과 같은 것이지요. 해인사를 보고 가야산 등정을 한다해도 그

감동을 제대로 느끼기 어려울 겁니다. 수도암에서부터 가야산이 그 본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이 갖고 있는 장엄함과 신성함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을 보지 않고서는,

그리고 수많은 산들이 가야산을 향해 자리를 잡고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지 않고서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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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반가운 손님이 왔다고 생각되었는지 까마귀 몇마리가 우리 앞으로 날아와 공중에서 멋진

환영의 춤을 추어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두리봉에서도 까마귀를 만났었습니다.

박하님이 제 등에 무릎을 붙이고 조여줄 때 제가 "아악-아!"하고 소리를 몇번 질렀는데,

잠시후 어디선가 "악-아가!"하고 우는 새소리가 몇번 들렸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재미있는 소리여서 한바탕 웃었는데

까마귀가 제가 지르는 비명소리를 흉내내 "악-아가!"하고 울은 것입니다. 

상왕봉 정상에서 우리를 맞아준 까마귀들이 그 까마귀는 아니겠지만

"마음은 하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 역시 우리의 마음을 안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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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에 오르면 상왕봉에 올라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일행은 상왕봉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이미 가야산의 신성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남겨두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아니 겸손해져야 할 것 같았습니다. 더 낮아져야 할 것 같았습니다.